故 장정진씨 사건에 대한 좀 색다른 시각
최근에 故 장정진씨 사건으로 여기 저기 시끄러운 것을 본다.
개인적으로던 사회적으로던 정말 안타까운 일이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 여기면서, 조금 다른 시각이 담긴 글이 있어 포스트 해본다.
글의 요지는 방송 매체에 대한 비판 및 그안에서 생존 혹은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큰 사고 이건 작은 일이건 간에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다.’이 문장이 왜이리 크게 와닫는지…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조금씩은 주변의 상황 그리고 ‘먹고살기 위하여’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찌…?
['故 장정진씨 사건 대응의 몇가지 오해' ]
사회과학자들은 사람들은 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 여기며 환경오염으로 죽어 가는 사람은 적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는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환경 오염 등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더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고는 끔찍할 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서 항상 적나라한 장면으로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드러나는 것은 더 심각하고 공포스럽게 생각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故 장정진씨의 죽음으로 불거진 방송 프로그램의 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어이 없는 죽음에 대해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할말을 잃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학성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모두 가학성 프로그램을 없애라고 한다. KBS 국감장에서는 2000년 이후 총 28건의 방송 출연자 안전사고가 있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사고가 일어나면 대개 그 사고를 일으키게 된 당사자를 찾는데 바빠진다. 그리고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만전을 기하라는 식의 비판이 제시된다.
그런데 정말 당장에 가학성 프로그램을 없애고 안전사고에 대해 만전을 기하면 될까? 이렇게만 생각하면 방송매체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른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 방송 매체라는 매체적 속성 때문에 당장의 사고만 아니라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나 방송인들이 이번 사고에서 보인 눈물은 故 장정진씨 개인에 대한 슬픔 이전에 자신의 슬픔이기도 하다. 방송인들과 연예인들은 방송 매체의 화려함 뒤에 숨겨있는 위험한 속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은 현시(顯示)욕구와 이를 통한 시장논리의 지배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존권적 수단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은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기본적인 생존이나 생계를 유지한다. 여기에 이미지라는 관리전략이 반드시 필요한 매체이다. 방송 매체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충동질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는 일종의 거간꾼인 셈이다.
현시 욕구를 통한 생계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대 거간꾼인 방송매체가 요구하는 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제법 유명하다고 해도 이러한 매체들의 무리한 요구를 외면하면 깜깜한 나락에 떨어지기 쉽다. 대형 유명인이 되지 않고서야 그것을 거부할 힘은 거의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큰 사고 이건 작은 일이건 간에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다. 생존과 생계,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현시의 강한 열망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러한 면을 철저하게 울면서 숨기도록 한다.
괴로워도 항상 밝고 웃음을 띄는 존재이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가학성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방송 매체 자체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이러한 위험은 항상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셈이다.
따뜻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방송 매체는 매우 비인간적인 수단화와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필요 없으면 내치고 필요하면 사람을 언제든지 수단화, 도구화는 속성을 지녔다.
이 때문에 故 장정진씨의 죽음으로 새삼 불거진 문제는 비단 일부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방송 매체의 속성이자 방송 문화 전체의 문제다. 단지 가학성 프로그램의 존폐 여부, 안전 사고 대비,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은 곁가지다.
그동안 가학성 프로그램이야 약간 손을 보고 안전사고에 대비하겠다고 하면 그뿐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비인간화와 수단화의 방송 문화에서는 가학성 프로그램이나 안전 사고 대비 여부와 관계없이 죽음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죽음과 수단화가 아니라 삶과 인간적인 매체를 위해서 근본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시청자들의 방송 매체의 근본 속성과 방송 체제, 구조에 대한 애정과 감시의 눈길이 동시에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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